
▲ 김성운 실리콘투 대표이사가 유럽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점점 확장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이 흐름의 중심에 K뷰티 전문 유통기업 실리콘투가 각인되며 주목을 받고 있다. 김성운 실리콘투 창업자이자 대표이사는 유럽 대형 유통사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국내 브랜드를 현지 시장에 본격적으로 안착시키고 있다. 기존 유통 구조의 장벽을 데이터와 물류로 돌파하며, K뷰티 수출의 새로운 무대를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실리콘투를 중심으로 K뷰티 무대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한동안 미국이 최대 수출지로 자리 잡았으나 최근 흐름은 달라지고 있다.
실제 2025년 4월 기준 국내 화장품의 유럽 수출 비중은 17.2%로 미국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2024년만 해도 유럽 비중은 13.8%에 그쳐 미국보다 4%포인트 이상 낮았지만 불과 1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수출액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유럽 수출액은 5억1천만 달러로 지난해 연간 실적의 40% 이상을 불과 4개월 만에 달성했다.
이 같은 흐름은 실리콘투의 실적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리콘투의 올해 1분기 유럽 매출은 813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33%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87% 급증한 수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유럽이 처음으로 북미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북미 매출은 452억 원에 그쳤다. 지난해만 해도 지역별 매출 비중은 북미 32%, 유럽 24%로 북미가 우세했지만 올해 들어 유럽이 확실히 주도권을 가져간 모습이다.
지난 5월 실리콘투가 개최한 간담회에서 김성운 대표는 “유럽시장에서 K뷰티에 대한 실질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며 “부츠, 세포라, 디엠, 더글라스 등 유럽 대형 유통사의 고위 경영진이 한국을 직접 찾아 K뷰티 브랜드 유치에 나설 정도”라고 강조했다.
실제 현지 반응도 뜨겁다. 영국 대표 헬스앤뷰티(H&B) 유통사 부츠는 자사 스킨케어 매출의 10%가 K뷰티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화장품 시장 트렌드 가운데 첫 번째로 ‘해외 브랜드 확대’를, 여섯 번째로는 ‘가정용 미용기기 수요 증가’를 꼽으며 메디큐브의 ‘부스터프로’를 대표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현재 부츠 영국 공식 온라인몰에서는 ‘트렌딩 온 소셜’ 탭에서 K뷰티 브랜드가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세포라 영국 법인도 ‘코리안 스킨케어’라는 독립 카테고리를 운영하며 소비자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K뷰티가 유통 실험 단계를 넘어 실질적 매출 기여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유럽시장에서의 K뷰티 약진은 화장품 기업 투자자들에게도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중심이던 글로벌 뷰티 흐름이 유럽까지 확장되며 새로운 성장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 실리콘투의 폴란드 물류센터. <실리콘투>
다만 유럽 수출의 상당수는 글로벌 기업 간 거래(B2B) 형태로 이뤄진다. 브랜드사 입장에서는 현지 소비자의 실제 구매 반응과 판매 추이를 면밀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K뷰티 수출 주체가 대부분 비상장 인디 브랜드인 탓에 투자자들이 정보에 직접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도 리스크로 지적된다.
이런 구조적 제약 속에서 실시간 데이터와 유통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실리콘투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김성운 대표는 일찍이 유럽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현지 유통 전략을 설계해왔다. 유럽 대형 유통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장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것도 그 일환이다.
실리콘투는 유럽에서 보기 드문 K뷰티 전문 유통사다. 물류·재고·현지 대응까지 직접 관리하며 기존 유통 진입장벽을 정면 돌파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특히 수출 인증, 문서, 통관 등 까다로운 규제가 많은 유럽시장에서 실리콘투에 축적된 데이터 및 노하우가 핵심 인프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실제 유럽 유통망은 초기 고정비 부담이 막대하다. 물류비·자금 조달·인력 운용 등 진입 장벽이 높아 개별 브랜드가 단독으로 뛰어들기엔 현실적 제약이 크다.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유럽시장에서 연매출 30억 원을 달성하려면 약 180억 원 이상의 선투자가 필요한 구조다.
과거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4년 미샤를 포함한 국내 주요 K뷰티 브랜드들이 유럽 유통사 입점을 진행했으나 재고 공급 지연으로 판매 중단 사례가 잇따랐다. 당시 한국 본사에서 유럽 현지 창고까지 상품이 재입고되는 데만 평균 5~6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성운 대표는 2023년부터 유럽 전역을 아우를 수 있는 물류 인프라 구축에 본격 착수했다. 중심 거점은 폴란드 물류센터다. 해당 물류창고는 기존 3천 평 규모에서 3900평으로 확장된 상태다. 인근에 확장 가능한 부지가 있어 향후 수요에 따라 추가 확장도 가능하다. 여기에 네덜란드·영국·프랑스 등 주요 소비국에 지사를 운영하며, 국가 수요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구조도 마련했다.
이러한 인프라 확대는 실제 브랜드 입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리콘투에 따르면 오는 2분기와 3분기 영국 부츠 매장에 티르티르, 바이오던스, 토코보, 닥터엘시아, 퓌 등 다수의 K뷰티 브랜드가 순차적으로 진출한다.
부츠는 영국 전역에 2천 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대표적 H&B 유통 채널이다. 대중 접근성이 뛰어난 만큼 K뷰티 브랜드의 현지 인지도 확대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업계 안팎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권우정 교보증권 연구원은 “실리콘투는 배송 적시성과 재고 안정성 측면에서 유럽 대형 리테일러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며 “올해 예상 매출액은 1조1625억 원, 영업이익은 2402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승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실리콘투는 유럽, 중동, 북미 3대 축을 중심으로 성장 기반을 탄탄히 다져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전략적 입지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며 “특히 유럽 시장에서는 대형 유통사와의 직거래 확대, 폴란드 물류창고, 통관 규정 대응 등을 통해 구조적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