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사전투표제를 폐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어 사전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다. 

강성 보수층을 겨냥해 사전투표 부정 의혹을 제기해왔는데 사전투표를 맞아 당장 한 표가 급해지면서 급변침한 것이다. 이렇다할 설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3년 전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행태를 그대로 반복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문수 갑자기 '사전투표 독려', 시간 쫓긴 '이중 플레이' 윤석열 닮음꼴 구설수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6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국민의힘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김문수 후보의 사전투표 참여 독려를 두고 '이중 플레이'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앞서 김 후보는 25일 충청북도 옥천군에 위치한 육영수 여사 생가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는 29일 목요일과 30일 금요일에 사전투표가 예정돼 있다"며 "(저도) 사전투표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의 과거 발언과 크게 상반되는 입장이다. 김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일 때는 물론이고 최종 후보가 된 뒤에도 사전투표제를 폐지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대 극우 지지층의 표심에 소구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김 후보는 지난 3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감사원이 선관위를 감시하고 사전투표를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또 4월24일 서울 종로구 채널A 스튜디오에서 열린 2차 경선 '일대일 맞수 토론회'에서는 "부정선거가 있다. 우리나라의 선거 관리가 부실하고 특히 사전투표제도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국민이 믿지 못하는 부패하고 비리 많은 선관위 때문에 부정선거론이 증폭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나아가 김 후보는 그동안 줄곧 사전투표와 관련된 음모론에 동조해왔다. 2020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에는 전광훈 목사가 창당한 자유통일당 대표를 맡기도 했다. 전광훈 목사는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또는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 전산 시스템에 접근해 민주당에 유리하도록 사전투표 결과를 조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의 개표원은 조직적으로 민주당 표를 다른 표와 바꿔치기하고 보수정당 표는 사표로 만든다.

그런 김 후보가 돌연 사전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나선 것은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 퍼진 '사전투표 부정론'이 자칫 지지층 투표 참여율 전반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22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사전투표 의향을 물은 결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충의 51%는 사전투표를 하겠다고 응답했지만 국민의힘 지지층 가운데 사전투표 의향을 밝힌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김 후보는 25일 충남 공주시 유세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부정선거 의혹이 일소됐다고 보는 거냐'는 취재진 질문에 "사전투표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하는 건 위험성이 있다"면서도 "있는 제도에서 우리가 투표하지 않을 때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일단 사전투표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지층의 투표 참여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의 기존 공약이나 주장과 배치되는 발언을 한 셈이다. 이중적 행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문수 갑자기 '사전투표 독려', 시간 쫓긴 '이중 플레이' 윤석열 닮음꼴 구설수

윤석열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사건 5차 공판을 마친 후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직전 대선에서도 사전투표를 며칠 앞두고 당연한 듯 유사한 행보를 걸었다. 사전투표 직전까지는 '사전투표는 부정선거의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보수층을 결집하고, 사전투표를 며칠 앞두고는 '걱정 말고 투표하라'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당시 국민의힘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권영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전투표 이틀 전인 2022년 3월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명칭은 '윤석열도 사전투표 하겠습니다'였다.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높은 사전투표율이 승리의 발판이 된다. 지금은 단 한 표도 소중한 초박빙의 구도다. 상대 후보 지지자들은 사흘 동안 투표하고 우리 당은 하루만 투표해서 되겠냐"고 했다. 

국민의힘은 사전투표에 소극적으로 임할 경우 코로나19 확진자 폭증과 감염 우려로 윤 전 대통령 주력 지지층인 고령층 사전투표율이 저조할 것을 우려해 사전투표 독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2020년 4·15 총선 참패 뒤 황교안·민경욱씨 등이 퍼뜨린 사전투표 부정선거 음모론 때문에 지지층 일각에서 사전투표 거부 운동이 벌어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윤 전 대통령도 직접 사전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2월28일 강원 동해시 선거 유세에서 "당일 투표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며 "4·15 총선 부정 의혹을 가지고 계신 것 잘 알고 있다. 국민의힘이 공명선거와 부정 감시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사전투표 첫날인 2022년 3월4일 부산에서 사전투표를 마쳤다. 당시 국민의힘은 '우리의 내일을 바꾸는 사전투표'라며 이를 적극 홍보했다.

하지만 당시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2주 전만 해도 사전투표의 부정선거 가능성을 지적했었다. 

국민의힘은 2022년 2월11일 '공명선거·안심투표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부정선거 감시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공명선거·안심투표추진위원회' 첫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과연 선거관리가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 내가 행사한 소중한 한 표가 제대로 반영이 되는 것인지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면 다시 말을 바꿨다. 

윤 전 대통령은 사전투표를 앞두고는 '걱정 말고 투표하라'고 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부정선거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나중에 '부정선거 의혹'을 전면에 내걸었다.

김 후보의 오락가락 행보를 두고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신지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채널A 유튜브 '정치시그널'에서 "어떨 때는 '동쪽으로 가면 안 돼' 했다가 지금 '동쪽으로 가자' 이러고 '사전투표 하면 안 돼' 했다가 '사전투표 하자' 이런다. 지금 김문수 후보의 메시지는 선명해야 된다"며 "본인이 이제까지 부정선거와 관련해서 얘기했던 것 중에 그때는 내 생각이 틀렸었다고 바로잡을 건 바로잡으면서 '사전투표 열심히 합시다' 이렇게 가야 더 극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전국지표조사(NBS)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19일부터 21일까지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는 국내 통신3사가 제공하는 휴대폰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