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장세욱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0년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다 뒤늦게 경영에 합류했다.

1996년 동국제강에 과장으로 입사해 부장, 이사, 상무, 전무, 사장을 거쳐 2014년 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동국제강에서 경영관리부문과 해외지사, 포항제강소 등을 두루 거쳤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그룹 경영전략실장을 맡으며 그룹의 핵심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10년 말 유니온스틸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돼 동국제강의 주력 계열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형 장세주 전 동국제강 회장이 개인비리로 물러난 뒤 동국제강의 1인 대표이사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소탈한 성격과 개방적인 스타일로 '제2의 박용만'으로 불리고 있다.

1996년 소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강원도 양구·인제 등 전방에서 포대장으로 근무했으며, 사병들과 동고동락한 덕분에 직원들의 애환을 잘 이해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회식 때 노래방에 가면 최신곡들을 부르는 등 소탈한 모습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직원들과 함께 최신 개봉영화를 감상하기도 하고 직원들의 생일 때 자필로 사인한 책을 선물한 적도 많다고 한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6년 동국제강에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그 뒤 동국제강 미국지사를 거쳐 포항제강소 지원실장(이사), 관리담당 부소장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동국제강그룹 전략경영실장을 맡아오다 2010년 유니온스틸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둘을 겸직했다.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이 합병하면서 2015년 1월1일 동국제강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 학력

1981년 환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5년 육군사관학교를 41기로 졸업했다.

1995년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 가족관계

장상태 전 동국제강 회장의 차남으로 장세주 전 동국제강 회장의 동생이다.

장세주 회장과 9살 터울이다.

◆ 상훈

2015년 제42회 상공의 날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상훈

2015년 제42회 상공의 날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어록


“동국제강 100년을 위해 임직원 모두가 혼연일체로 힘차게 뛰어달라. 극복이라는 책임경영을 완수하고 경영의 스피드를 살려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창조적 마인드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자.”(2015년 신년사에서)

“경기가 나쁠수록 한발 앞서 투자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2013년 5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회사가 5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사나 업계의 도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직원들이 회사를 믿고 묵묵히 땀 흘리며 일해 주었기 때문이다.”(201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거창한 행사보다는 회사가 더 잘 되도록 투자와 직원 복지에 더 신경 쓰겠다.”(2011년 10월, 기자가 회사창립 50주년을 맞는 2012년에 대한 계획을 묻자)

“리더 한 사람으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힘을 합치기 위한 비전을 만드는 것이다. 계열사 비전이 조직 구성원들에게 공유되고 한 방향으로 정렬되도록 팀장이 노력해야 하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그룹 비전은 100년이 지나도 지속 가능한 기업,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회사에 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2010년 6월 그룹사 팀장들에게)

◆ 평가

소탈한 성격과 개방적인 스타일로 '제2의 박용만'으로 불리고 있다.

1996년 소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강원도 양구·인제 등 전방에서 포대장으로 근무했으며, 사병들과 동고동락한 덕분에 직원들의 애환을 잘 이해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회식 때 노래방에 가면 최신곡들을 부르는 등 소탈한 모습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직원들과 함께 최신 개봉영화를 감상하기도 하고 직원들의 생일 때 자필로 사인한 책을 선물한 적도 많다고 한다.

◆ 기타

아버지 장상태 회장이 ‘남자가 국가에 헌신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말을 새기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96년 소령으로 예편하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 육군에서 근무했다.

무겁고 보수적인 분위기를 깨기 위해 다양한 혁신을 시도했다. 유니온스틸 재직 당시부터 소통경영으로 화제를 모았다. 페이스북에 ‘유니온스틸 소통방’을 만들어 400여 명의 직원들과 다양한 정보를 공유했다.

유니온스틸 사장으로 취임한 뒤 줄곧 ‘컬러 경영’을 밀었다. 유니온스틸이 유색 강판을 주로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에도 색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명함에 QR코드를 넣은 점도 화제를 모았다. QR코드를 명함에 새겨 스마트폰으로 바로 유니온스틸 홍보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유니온스틸 사장이 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직원들과 저녁식사였다. 가나다 순서대로 8명씩 조를 나눠 300여 명의 직원 모두와 저녁을 함께했다.

유니온스틸 사장 시절 매달 하루를 ‘캐쥬얼데이’로 정해 자율복장 출근을 시도했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철강업계에서 파격적 시도로 불렸다. 이날 모든 회식을 금지하고 전 직원을 5시 전에 강제로 퇴근하게 했다.

월요일 아침 본사 사원이나 대리급 직원들을 자신의 통근차량에 태워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월요일이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2013년 8월부터 44주 동안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우리 직원들이 어디 살고 어떤 교통수단으로 출근하는지, 집은 어떻게 구했으며 취미는 어떤 것인지 인사정보 서류만으로 알 수 없던 것들을 알게 돼 즐거운 출근길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니온스틸 재직 당시 회색이던 작업복을 푸른 색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 기업문화의 일신을 위해 작업복 교체부터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고객을 잘 응대하기 위해서는 내부 고객인 직원부터 챙겨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유니온스틸 사장 취임 초기 부산공장을 방문해 직원들의 휴게공간과 샤워시설을 개보수하도록 했다.

2011년 총각 사원 10명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들과 미팅을 주선하기도 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근 시간보다 1시간30분 먼저 회사에 나와 어학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한다. 육사 출신다운 절도와 엄격함이 배어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문화와 예술 쪽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국립발레단과 역대 후원회장들의 추천을 받아 3년 동안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시즌 공연이 있을 때는 불가피한 일이 없으면 공연을 관람하고 단원들과 뒤풀이를 함께했다고 한다.

재계의 얼리어답터로 통한다. 미국 유학시절부터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직접 사용해보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