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5월 말 유해진, 이제훈 주연의 영화 ‘소주전쟁’이 개봉한다.
IMF 외환위기로 국민 소주기업이 무너지던 시기 회사를 살리려 애쓰는 소주회사 직원과 그 회사를 삼키려는 목적을 숨기고 접근한 투자사 직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 모티브가 된 소주업체 진로는 결국 법정관리 끝에 하이트맥주에 인수됐고, 두 회사 합병으로 국내 최초 소주 맥주 통합 기업이 탄생했다.
18일 비즈니스포스트는 영화 ‘소주전쟁’이 담고 있는 국내 주류업계 일대 사건이 현재 시장구도를 형성하게 된 실제 역사를 살펴봤다.
◆ 2대를 못 간 국민 소주기업 진로그룹의 몰락
진로는 장학엽 창업주가 1924년 평안도 용강군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에서 출발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남 목포에 기반한 삼학소주가 60% 넘는 시장점유율로 국내 소주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진로에게 기회가 온 건 1965년 정부가 국내 증류식 소주 판매를 금지한 ‘양곡 관리법’을 시행하면서다.
곡물로 술을 빚지 못하게 되자 저가 원료에서 만든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추가한 희석식 소주가 대세가 됐고, 발 빠르게 희석식으로 전환한 진로는 1970년 소주시장 1위에 올랐다.
또 1976년 정부가 지역별로 1개 업체만 소주를 생산하고, 생산량의 50%를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하는 ‘자도주 의무 구입제’를 실시하면서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기반을 둔 진로는 국민소주로 자리매김했다.
진로는 소주사업에 집중하며 안정적 재무구조를 구축해나갔다. 진로가 위기에 빠진 것은 장 창업주의 차남인 장진호 전 회장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다.
장진호 전 회장은 사촌형, 이복형과 경영권 분쟁 끝에 1988년 진로그룹 회장에 오른 뒤 ‘탈주류’를 선언하고 급속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대표적으로 합작사 진로쿠어스맥주를 설립해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한 맥주시장에 진출했다. 백화점, 건설업, 운송업, 금융업으로도 손을 뻗었다.
진로그룹은 1996년 재계 순위 19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듬해 IMF 외환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그해 396억 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를 냈다.
◆ 만년 2위 조선맥주, ‘하이트’로 일발 역전
하이트맥주는 1933년 8월 대일본맥주가 경기 시흥군 영등포읍에 설립한 조선맥주주식회사를 모태로 한다. 1945년 해방 뒤 미군정에 귀속됐고, 한국전쟁을 거쳐 1952년 부산지역 민간 자본에 인도됐다.
1967년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박경복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박 명예회장은 1971년 서울 영등포 공장을 2배로 증설하고 1977년 도산한 한독맥주의 마산공장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다만 조선맥주는 1950년대 이후 동양맥주(현 오비맥주)에 밀려 만년 2위 신세를 면치 못했다. 동양맥주 역시 1933년 일본 맥주업체 기린맥주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40여 년 동안 굳어진 국내 맥주시장 판도에 균열이 간 건 조선맥주가 1993년 신제품 ‘하이트’를 출시하면서다. 당시 박문덕 회장이 회사 인근 여관을 통째로 빌려 직원들과 합숙하며 신제품을 개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마침 경쟁사 동양맥주는 모기업 두산그룹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터였다.
‘지하 150m 천연암반수’ 마케팅을 앞세운 하이트는 출시 3년 만에 국내 맥주시장 1위에 올랐다. 조선맥주의 시장점유율 역시 1993년 30% 수준에서 1996년 43%까지 오르며 업계 1위 자리를 꿰찼다. 1998년 조선맥주는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변경했다.
◆ 골드만삭스의 뒤통수, 하이트맥주 품에 안긴 진로
진로가 하이트맥주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다.
장 전 회장은 1997년 9월 파산을 피하기 위해 법원에 화의신청을 하고 이듬해 3월 승인을 받았다. 화의 내용은 이자율을 차입금의 10%로 동결하고 2003년~2007년 5년 동안 매 분기 말 균등분할상환하는 것이 뼈대였다.
진로그룹의 자문을 자처하고 나선 골드만삭스는 화의 승인 뒤 부실 딱지가 붙은 진로 채권을 저가에 매집해 1대 채권자가 됐다. 2003년 3월 진로가 원금을 상환할 수 없다며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그해 4월 골드만삭스는 곧바로 진로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영화 ‘소주전쟁’은 이 시기 진로와 골드만삭스를 모티브로 두 회사 직원 사이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낼 것으로 보인다.
하이트맥주는 2005년 롯데와 두산, CJ 등 내로라는 대기업을 제치고 3조4100억 원에 진로를 인수했다. 1위 소주업체가 1위 맥주업체 품에 안긴 것이다.
그 뒤 2011년 하이트진로그룹은 하이트맥주와 진로를 합병해 하이트진로를 출범했다.
하이트진로는 현재 소주시장에서 참이슬과 진로를 앞세워 압도적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012년 ‘카스’ 마케팅에 집중한 오비맥주에게 맥주시장 1위 자리를 내준 뒤 지금껏 탈환하지 못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카스는 진로와 미국 쿠어스의 합작사 진로쿠어스가 1994년 출시한 제품이다. 진로가 부도를 낸 뒤 화의절차를 밟던 때인 1998년 벨기에 인터브루와 지분을 합작한 오비맥주가 진로쿠어스맥주를 인수했고, 카스는 오비맥주의 주력 제품이 됐다. 허원석 기자
IMF 외환위기로 국민 소주기업이 무너지던 시기 회사를 살리려 애쓰는 소주회사 직원과 그 회사를 삼키려는 목적을 숨기고 접근한 투자사 직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5월 말 개봉하는 영화 ‘소주전쟁’의 모티브가 된 국내 주류업계 일대 사건을 계기로 국내 최초 소주 맥주 통합 기업이 탄생했다.
영화 모티브가 된 소주업체 진로는 결국 법정관리 끝에 하이트맥주에 인수됐고, 두 회사 합병으로 국내 최초 소주 맥주 통합 기업이 탄생했다.
18일 비즈니스포스트는 영화 ‘소주전쟁’이 담고 있는 국내 주류업계 일대 사건이 현재 시장구도를 형성하게 된 실제 역사를 살펴봤다.
◆ 2대를 못 간 국민 소주기업 진로그룹의 몰락
진로는 장학엽 창업주가 1924년 평안도 용강군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에서 출발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남 목포에 기반한 삼학소주가 60% 넘는 시장점유율로 국내 소주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진로에게 기회가 온 건 1965년 정부가 국내 증류식 소주 판매를 금지한 ‘양곡 관리법’을 시행하면서다.
곡물로 술을 빚지 못하게 되자 저가 원료에서 만든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추가한 희석식 소주가 대세가 됐고, 발 빠르게 희석식으로 전환한 진로는 1970년 소주시장 1위에 올랐다.
또 1976년 정부가 지역별로 1개 업체만 소주를 생산하고, 생산량의 50%를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하는 ‘자도주 의무 구입제’를 실시하면서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기반을 둔 진로는 국민소주로 자리매김했다.
진로는 소주사업에 집중하며 안정적 재무구조를 구축해나갔다. 진로가 위기에 빠진 것은 장 창업주의 차남인 장진호 전 회장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다.
장진호 전 회장은 사촌형, 이복형과 경영권 분쟁 끝에 1988년 진로그룹 회장에 오른 뒤 ‘탈주류’를 선언하고 급속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대표적으로 합작사 진로쿠어스맥주를 설립해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한 맥주시장에 진출했다. 백화점, 건설업, 운송업, 금융업으로도 손을 뻗었다.
진로그룹은 1996년 재계 순위 19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듬해 IMF 외환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그해 396억 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를 냈다.

▲ 1993년 하이트 지면 광고. <하이트맥주>
하이트맥주는 1933년 8월 대일본맥주가 경기 시흥군 영등포읍에 설립한 조선맥주주식회사를 모태로 한다. 1945년 해방 뒤 미군정에 귀속됐고, 한국전쟁을 거쳐 1952년 부산지역 민간 자본에 인도됐다.
1967년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박경복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박 명예회장은 1971년 서울 영등포 공장을 2배로 증설하고 1977년 도산한 한독맥주의 마산공장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다만 조선맥주는 1950년대 이후 동양맥주(현 오비맥주)에 밀려 만년 2위 신세를 면치 못했다. 동양맥주 역시 1933년 일본 맥주업체 기린맥주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40여 년 동안 굳어진 국내 맥주시장 판도에 균열이 간 건 조선맥주가 1993년 신제품 ‘하이트’를 출시하면서다. 당시 박문덕 회장이 회사 인근 여관을 통째로 빌려 직원들과 합숙하며 신제품을 개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마침 경쟁사 동양맥주는 모기업 두산그룹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터였다.
‘지하 150m 천연암반수’ 마케팅을 앞세운 하이트는 출시 3년 만에 국내 맥주시장 1위에 올랐다. 조선맥주의 시장점유율 역시 1993년 30% 수준에서 1996년 43%까지 오르며 업계 1위 자리를 꿰찼다. 1998년 조선맥주는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변경했다.
◆ 골드만삭스의 뒤통수, 하이트맥주 품에 안긴 진로
진로가 하이트맥주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다.
장 전 회장은 1997년 9월 파산을 피하기 위해 법원에 화의신청을 하고 이듬해 3월 승인을 받았다. 화의 내용은 이자율을 차입금의 10%로 동결하고 2003년~2007년 5년 동안 매 분기 말 균등분할상환하는 것이 뼈대였다.
진로그룹의 자문을 자처하고 나선 골드만삭스는 화의 승인 뒤 부실 딱지가 붙은 진로 채권을 저가에 매집해 1대 채권자가 됐다. 2003년 3월 진로가 원금을 상환할 수 없다며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그해 4월 골드만삭스는 곧바로 진로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영화 ‘소주전쟁’은 이 시기 진로와 골드만삭스를 모티브로 두 회사 직원 사이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낼 것으로 보인다.
하이트맥주는 2005년 롯데와 두산, CJ 등 내로라는 대기업을 제치고 3조4100억 원에 진로를 인수했다. 1위 소주업체가 1위 맥주업체 품에 안긴 것이다.
그 뒤 2011년 하이트진로그룹은 하이트맥주와 진로를 합병해 하이트진로를 출범했다.
하이트진로는 현재 소주시장에서 참이슬과 진로를 앞세워 압도적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012년 ‘카스’ 마케팅에 집중한 오비맥주에게 맥주시장 1위 자리를 내준 뒤 지금껏 탈환하지 못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카스는 진로와 미국 쿠어스의 합작사 진로쿠어스가 1994년 출시한 제품이다. 진로가 부도를 낸 뒤 화의절차를 밟던 때인 1998년 벨기에 인터브루와 지분을 합작한 오비맥주가 진로쿠어스맥주를 인수했고, 카스는 오비맥주의 주력 제품이 됐다. 허원석 기자